할머니의 마늘 냄새
중2 때, 우리 가족은 원주에서 살았다. 큰아버지가 원주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사셨던 터라 나는 틈만 나면 큰아버지 댁에 놀러 갔다. 아니, 동네 사거리로 놀러 갔다. 할머니께서 사거리 모퉁이에서 나물 장사를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할머니께 자주 놀러 간 이유는 한글을 가르쳐 드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할머니께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쳐 드렸는데, 그것만도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그러자 난 가르치는 것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점차 할머니를 찾아가지 않게 됐다.
그 무렵 할머니는 관절염이 악화돼 더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마늘 까기’ 일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마늘 냄새가 얼마나 독했는지 집 안의 모든 물건에 그 냄새가 베어들었고, 옷을 빨아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린 나는 독한 냄새에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할머니는 “우리 손녀 이리와 봐라.” 하시면서 꼭 안아 주셨다. 그러나 철이 없던 나는 “마늘 냄새 나!”라면서 손길을 뿌리쳐 버렸다. 그 뒤 할머니 댁에 잘 놀러 가지 않았고 얼마 뒤 춘천으로 전학을 왔다.
수능시험을 치른 어느 날, 고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고모의 떨리는 음성이 내 귀에 와 부딪치는 순간, 갑자기 몸이 나른해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 할머니는 당신이 살던 아파트 11층에서 떨어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다.
마늘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나는 얼마나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또 하나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녀가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할머니께 내가 글을 계속 가르쳐 드렸더라면 이토록 후회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을 마감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안타깝게도 할머니에겐 마지막 말을 남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눈물나게 맵던 마늘 냄새가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안효정 님(가명)|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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