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과잉 생산되는 시대다. 대통령 후보는 저마다 국민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연예인들은 팬들을 사랑한다고 늘 소리치고, 기업체들은 소비자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루에도 수십번 씩 TV 광고에서 사랑을 말한다. 그래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늘 사랑한다고 여기던 사람에게, 그래서 굳이 사랑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 사람에게, 그래서 오히려 사랑한다고 말하기 쑥쓰러웠던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보기로. 방법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택했다.가히 문자메시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과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감동을 느끼게 했던 문자는 몇 건이나 될까?

지난 13일 취재진은 수능시험을 마치고 논술 준비에 한창인 대륜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찾았다. 각자 목표로 하는 대학별로 학반을 재편성해서 논술 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취재진이 만난 학생들은 ○○대 이과 준비반 28명. ‘실험’ 의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친 뒤 가급적 짧게 그리고 최대한 답장이 올 수 있도록 문자를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은 긴장하고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실험 전 부모님에게 ‘사랑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는 학생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을 때, 단 한 명도 없었다. 여학생들이라면 결과가 다소 달랐겠지만 역시 무뚝뚝한 대구의 남학생들은 부모님에 대한 애정 표현이 서툴고 드물었다.

문자를 보낸 지 1분도 채 안돼 한 학생이 손을 들어 답장이 왔음을 알렸다. 엄마로부터 ‘나도 사랑한단다.’라는 아주 짧은 답이 왔지만 학생은 너무나 해맑게 웃으며 동시에 쑥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2분, 3분이 지나면서 아이들 표정에는 초조한 빛이 감돌았다.

한 명, 두 명씩 부모님의 답장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손을 번쩍 번쩍 들 때마다 아직 답장을 받아들지 못한 학생들은 애꿎은 휴대전화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문자를 보낸 지 10분이 지났을 때 28명 중 답장을 받은 학생은 10명. 일부 학생은 부모님이 낮에 일하시기 때문에 문자를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고, 한 학생은 부모님이 아직 문자 보는 법을 모른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뜬금없는 아들의 애정 표현에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답장이 대부분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답장도 날아왔다. 한 어머니는 아들의 갑작스런 사랑 표현에 놀라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냐?’고. 차마 실험 중이라고 말하지 못한 학생은 못내 부끄러운 듯 “그냥 해봤어.”라며 엄마를 안심시켰고, 뒤늦게 어머니는 “그래 아들. 나도 사랑해.”라고 답해주었다.

문자를 보낸 지 30분. 중간에 답장을 받지 못한 학생은 한차례 더 문자를 보내도 된다고 했고, 마지막까지 답장을 받은 학생은 28명 중 18명이었다. 나머지 10명은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다소 실망한 표정이었다. 학생들은 대체로 ‘사랑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짧은 글을 보냈지만 답장은 느닷없는 아들의 사랑 고백에 놀란 부모님들의 감동이 가득 담겨있는 글들이었다.

실험이 끝난 뒤 저녁에 몇몇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험 내용을 부모님에게 알려드렸느냐는 물음에 학생들은 ‘행여 실망하실까봐 알려드리지 못했다.’고 답했다. ‘너무 기분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평소 자주 문자를 보내지 못해 죄송스러웠다.’는 학생도 있었고, ‘일 때문에 바빠서 답장 못해준 것을 미안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더 죄송스러웠다.’는 학생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