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힘내세요
‘띠룩, 띠룩, 띠룩, 띠띠룩, 띠룩.’ 세계 60억 인구 중 다섯 명만이 알 수 있는 암호. 아버지의 ‘개인기 1호’인 ‘띠룩춤’. 아버지는 코미디언 ‘배삼룡’이 별칭이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덕분인지 유머 감각이 넘치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방귀로 ‘현악 3중주’를 연주하시고, 가족끼리 바람을 쐬러 나가면 꼭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가 찾을 때까지 나오지 않는 엉뚱한 분이셨다.
지난해 봄이었다. 부대에 있는 나는 집에 안부인사 차 전화를 했다. 그런데 전화 받는 어머니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떨렸다. 난 뭔가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긴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제발 사람 다친 일만은 아니기를 기도하면서 어머니께 무슨 일이냐고 여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어머니의 대답을 들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가슴이 아려 왔다. 그동안 아버지는 가족 모르게 주식을 하셨다. 처음에는 투자 목적으로 조금씩 하던 것이 얼마 안 가 투기가 되고 몇 년이 지나다 보니 결국 전 재산의 대부분을 빚 갚느라 날리게 된 것이다. 정말이지 처음 그 말을 듣고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분이 어떻게 그런 실수로 그동안 얻은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을까.
하지만 휴가를 가서 본 아버지의 모습은 눈물 날 정도로 가슴 아프게 했다. 늘 농담과 웃음으로 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핼쑥하고 지쳐 보이는 모습으로 내 앞에 서 계시던 아버지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식들에게 더 잘해 주기 위해, 좀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일이 잘되기는커녕 빚만 늘었으니 아버지 속이 오죽이나 탔을까. 설상가상으로 건강까지 악화돼 직장도 그만두셨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동안 부모님이 주신 시원한 그늘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보다 더 큰 세 나무가 되어 더 넓은 그늘을 만들 것이다.
배익호 님|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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