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쌈짓돈
시어머님은 스무 살에 시집 와서 그 다음 해에 꽃다운 남편을 잃었다. 그리고 낳은 아이가 지금의 내 남편이다. 핏덩이를 안고 어머님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눈이 부르트도록 울었다고 하신다. 어머님은 육십이 다 되어서도 십 년 동안 모텔에서 청소부 일을 하셨다. 칠십이 되자 주인이 일을 쉬라고 해서 청소 일은 그만두고 여태 품을 팔러 다니신다.
일 년 전이었다. 당뇨를 앓던 남편이 입원을 했다. 아들이 입원한 동안에도 어머님은 오로지 일만 다니셨다. 나는 그런 어머님이 야속했다. 웬만하면 나와 교대로 간호를 해 주시면 좋으련만 어머님은 모르는 체하셨다. 그 사이 남편 병세는 악화돼 합병증까지 생겼다. 남편이 몇 달씩 병원에 입원해 있자 불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동안 쌓인 한을 풀기라도 하듯 어머님께 대들었다.
“어쩜 그렇게 병문안도 오지 않고 일만 하세요?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하지만 어머님은 아무 대꾸도 없으셨다.
그로부터 며칠 뒤 어머님은 나를 부르더니 작은 꾸러미를 주셨다. 무엇이 들어 있나 열어 본 나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 속에는 꼬깃꼬깃 접힌 돈, 구겨진 돈, 심지어 십 원짜리 동전까지 가득 들어 있었다. 또한 통장 속에는 그동안 드린 용돈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아 두셨는지 꽤 많은 액수가 찍혀 있었다. 어머님이 주신 돈은 모두 칠백만 원이었다.
“이걸로 아범 병이나 고쳐 줘라.” 어머님은 그 한마디만 하셨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택시 한 번 타지 않고, 이삼십 년 된 옷도 아깝다며 버리지 않는 어머님. 그렇게 검소하게 생활하며 힘들게 모은 돈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비 오듯 흘렸을 땀은 고통을 이기려는 회환의 눈물이었고, 꽁꽁 언 땅을 호미로 파던 그 몸짓은 자식의 고통을 대신하고 싶은 칠순 노모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을 왜 나는 진작 몰랐을까. 그동안 어머님을 원망했던 게 너무도 죄송해서 나는 엉엉 소리 내 울고 말았다. 그러자 어머님은 가만히 내 등을 토닥여 주시기만 했다.
하인순 님|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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