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사랑이 빨간 사랑 되도록
오늘은 5교시가 합동 체육이라서 아이들이 밖에 나가 운동을 하게 했습니다.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아이들 얼굴에 봄꽃 같은 환한 웃음이 피어납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지요. 그때였습니다. 우리 반 반장인 슬기가 나에게 다가와 노트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 엄마가 여기에 편지 쓰셨어요.”
작년에도 슬기가 우리 반이었는데, 가끔 나를 감동시키는 글을 보내 주시는 학부형이었습니다. 이번 편지에도 스스로 반성이 될 만큼 과찬의 말씀이 써 있었습니다. 슬기가 반장이 되어서 행복하다며 모든 것이 나를 만난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조용한 교실에 혼자 앉아 그 편지를 몇 번이나 읽어 보았습니다. 답장에 뭐라고 쓸까 고민했습니다. 무심코 노트를 넘기다 그만 슬기 일기를 보게 됐습니다.
‘3월 2일, 불행히도 이인혜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셨다.’
매사에 성실하고 침착해서 늘 눈여겨보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슬기는 나와 다시 만난 걸 불행으로 여겼나 봅니다. 그동안 만들어 놓은 모래성이 파도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한 줄짜리 메모에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다 큰 어른인 나도 이렇게 울고만 싶은데, 나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씻어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상처를 받고 나니 이제야 아이들의 눈물과 아픔이 헤아려집니다. 더 많은 마음수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 대한 내 풋사랑이 흙냄새 물씬 풍기는 빨간 사랑되길 기도합니다.
이인혜 님|대전시 서구 관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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