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시절 치른 빗물과의 전쟁
나는 결혼 8년 차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1999년 1월, 지하방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햇볕 한 줌 들지 않았고 살림은 자취집에서 옮겨 온 것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참 행복했지요. 처음 맞이한 여름, 우리는 형편상 가지 못했던 신혼여행을 대신해 제주도로 휴가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출발 며칠 전부터 난데없이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거예요.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쉴 새 없이. 출발 전날엔 태풍 ‘올가’까지 올라왔지요.
게다가 우리의 휴가를 망쳐 놓은 결정적 사건이 터졌습니다. “자기야! 작은 방이 물바다야.”
장판을 걷어 보니 바닥 곳곳에서 빗물이 샘처럼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나와 남편은 재빨리 바가지로 세숫대야에 빗물을 퍼 담았습니다. 빗물은 줄어드는 듯하다가 잠시 멈추면 금방 다시 고였습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빗물을 퍼냈지요.
어느새 날이 밝았을 때는 여행은 완전히 포기한 뒤였습니다. 근사한 휴가는커녕 지하방에서 빗물을 퍼내며 빵과 우유로 아침을 때우려니 목이 메고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더군요.
물을 푸다 속절없이 휴가 첫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빗물과의 전쟁은 예정된 휴가가 끝나고도 1주일 뒤에야 끝이 났습니다. 새는 빗물이 완전히 멈춘 다음 방바닥을 말리고 벽지를 다시 발라야 했으니까요. 무더운 여름 날 보일러를 돌리고 있자니 정말 찜통 속이 따로 없었습니다.
물바다가 된 신혼집에서 휴가 기간 내내 빗물을 퍼내야 했던 그해 여름. 눈물나게 서럽고 힘겨웠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서너 번 이사를 다닌 끝에 아담한 우리 집을 마련하여 이사할 날만 기다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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