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제는 당신 손을 잡고 싶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얘기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몸이 많이 약하셨던 엄마는 세 번의 유산 끝에 간신히 나를 낳았지요. 하지만 한달에 2~3주는 병원에서 지내셨고, 직업군인인 아버지는 저와 함께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신 시간이 길어지자 아버지는 외도를 하셨습니다.
중1 겨울 방학. 엄마가 집에 계셨기에 학교에 있던 내 마음도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교시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담임선생님께서 집에 가라고 하더군요. 나는 그저 신이 나서 엄마랑 함께 먹을 햄버거와 떡볶이, 순대를 사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요. 엄마는 풀도 죽이는 독한 약을 먹고 쓰러져 병원에 다녀온 뒤였습니다. 병원에서 포기를 했대요. 무작정 좋아서 사들고 온 간식을 차마 가방 밖으로 꺼낼 수 없었습니다. 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울기만 했지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는 세 달 만에 재혼했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혼자서 살아야 했기에 중학교 3년을 꽃집 아르바이트며 동네 아줌마들에게서 배운 부업을 하며 근근이 살았지요. 고등학교 입학비가 없어서 인문계를 포기하려 할 때 봉사활동 다니던 복지재단의 신부님 도움으로 그곳에서 24시간 보육사 일을 하며 원하던 학교에 갔고, 무던히도 애쓰며 대학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지난 세월을 보상이라도 해 주듯 날 사랑하는 남편과 6개월 된 아들과 살고 있습니다. 철이 들고 부모가 되니 하늘에 계신 엄마가 너무 그립습니다. 그리고 화해하지 못한 아빠…. 결혼식에서 손잡아 줄 사람이 없어 아직 식을 올리지 않은 걸 그분은 알고 계실까요. 내가 마음속으로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는 걸 알까요. 너무 밉기만 했던 그 손을 이제는 따뜻하게 잡고 싶습니다.
김미영 님 |충남 아산시 배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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